착각

요즘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착각을 하던 말던 현실은 그만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래서 내 맘대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직시하고 정확히 판단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특히 오늘은 친구가 허리가 아파서 정형외과에 다녀왔는데 의사선생님께서 친구의 자세가 좋지 않아 근육에 무리가 왔다는 진단을 하셨다. 친구는 원래 본인이 자세가 나쁜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순간 오늘 아침에 읽었던 말씀이 떠올랐다:

“I care very little if I am judged by you or any human court; indeed, I do not even judge myself. My conscience is clear, but that does not make me innocent. It is the Lord who judges me. Therefore, judge nothing before the appointed time; wait until the Lord comes. He will bring to light what is hidden in darkness and will expose the motives of the heart. At that time each will receive their praise from God.” (1 Corinthians 4:3~5)

재판장은 따로 있다. 나는 재판장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어느정도 옳게 살아도 재판장의 기준에서 옳게 살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우겨봤자 소용이 없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다.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성적이 잘 나오거나 취업이 좋은 곳에 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은 냉철해서 열매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본인 스스로가 자세가 좋다고 생각을 해도 실제로 자세가 좋지 않으면 몸은 아프기 마련이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험준비를 잘했다고 믿고 싶지만 정말 시험준비를 잘했는지는 시험을 쳐야 아는 법이다. 현실은 개인의 착각에 속지 않는다. 속는 건 개인일 뿐이다.

성경에서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고 부른다. 사탄은 속인다. 거짓말을 한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하와에게 속삭였지만 결국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죽는다. 지금 이 고통이 영원하지 않지만 영원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시각을 확대시켜 그것이 다인 것 마냥 그 친구의 마음에 속삭였을 것이다. 이 벌을 너는 피할 수 없을 거라고, 그래서 감옥을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해 그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인간은 너무 큰 죄를 져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이미 늦었다고, 마음에 두려움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거짓말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분명히 죽고, 벌을 피할 수도, 모면할 수도 있지만 그 후에는 또 삶이 계속되며, 하나님의 사랑이 씻을 수 없는 ‘너무 큰 죄’는 없다. 사탄은 마땅히 거짓의 아비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개개인의 선택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하나님은 계시고, 그 분은 재판장이시다. 기독교를 종교로써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생사의 문제이며, 이 현실을 부정하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인 일이 아니다. 차갑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건 본인 손해인 것이다. 현실을 최대한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다. 물론 현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다르고 여기서 믿음이 갈리는 것이지만, 크리스챤으로써 나는 현실을 하나님으로, 예수님으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한다. 내게 하나님의 생명력과 사랑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없다. 비록 하나님에 대해 거부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를 부정할 수 없다. 열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준이 된다는 건 결국 말씀이 나의 유일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하지 않겠다는 데에는 하나님이 재판장이시기에 나의 판단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깔려있다. 사도바울은 본인이 거리낌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느꼈던 자신감을 신뢰하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며,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리고 구했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나는 거리끼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며, 내 스스로 보기에도 정말 흠이 많은 연약한 사람이다.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는 얼마나 더할까? 분명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마음이 무겁고 조금 무서웠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지 잘 모르겠다.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어떨지, 조금 무섭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알려고 애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더해졌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해서 뿐만 아니라, 그래야 내가 사니까. 재판장의 시각에서 나의 삶을 바라봐야, 그래야 내가 진정으로 더 깨끗하고 거룩한 영혼이 되니까. 그래야 말 그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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