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밤편지

 

난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려

그럼 언제든 눈을 감고

가장 먼 곳으로 가요

한 소녀는 누군가를, 또는 무엇을, 사랑했다. 가끔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서서 그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다. 침대에 엎드려 누웠을 때는 몸이 침대 속으로 꺼져 지구를 뚫고 저 반대편으로 뿅, 하고 나오는 상상을 했으며 스파게티를 김치와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꽃을 좋아해서 꺾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당부하면서도 꽃을 꺾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아이스크림보단 얼음을 씹어먹는 걸 더 좋아했고 빗소리와 섞인 오르골 소리도 종종 듣는 습관이 있었다. 추운 날이면 어디에 있던지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해 몸을 덥히는 그런 사람이었고 남의 시선을 꽤나 아랑곳하지 않는, 마이웨이의 철학을 물려받은 딸이었다.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기를 택했으며 또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키고 보았다.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때에는 죄책감을 느꼈으며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또래 학생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를 걷다가도 리어카를 끌고 가시는 할아버지를 보면 마음이 시렸고, 촌스러운 꽃무늬가 가득한 옷을 입고 횡단보도에 서 계시는 할머니를 보면 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어지는 손녀였다. 소녀는 늘 웃고 다녔지만 어떤 때는 느닷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자신을 발견했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께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감사했지만, 그건 때론 슬픔이 서린 감사였고 때론 마법 같은 행복이 반짝거리는 감사였다.

어떻게 나에게 그대란 행운이 온걸까

지금 우리 함께 있다면 아, 얼마나 좋을까요

소녀 주위에는 늘 소녀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으나 소녀는 그들을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본척 못 본척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이던 몇 년째 이불 속에서 속닥속닥 속얘기를 나누던 사람이던 동일하게 사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라는 이름의 사람이 훌쩍 떠나도, 전에는 말도 섞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소녀는 사람에 대해서 뜨거웠지만 아주 차가울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여기 내 마음 속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소녀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일거라고 믿고 있었다. 어쩜 삶이 이토록 마법 같을까, 그녀는 종종 조용한 탄성을 지르곤 하였다. 만약 망토를 쓴 누군가가 다가와 너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이건 진짜 현실의 실체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면 단박에 믿을 것 같은, 그런 삶을 살았다 소녀는. 연필심을 유심히 바라보면 다이아몬드가 보이고 자신과 아무 관계 없는 것들을 보며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한 번 깨어있는 새벽녘이 되면 그토록 삶이 그리웠다.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이 바뀌지 않았으면– 늙지 않았으면, 잊혀지지 않았으면,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차오르면서 행복과 아쉬움이 뒤엉킨 밤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소녀가 할 수 있는 말은 사랑한다,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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