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인생

점심을 먹으러 기숙사 식당으로 내려가 식권 자판기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어떤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 있었는데 둘다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여학생은 자판기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고 남학생은 여학생의 가녀린 팔뚝을 잡고 있었다. 남학생은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에 핫핑크 옷을 입고 있었고 시험기간인지라 여학생은 모자와 안경을 쓰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내가 별 생각없이 줄에 서 있다가 남학생이 여학생의 팔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던 건 확실하다. 이건 대략 내 마음 속에서 그 당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던 생각들이다:

‘아니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계산하는데 뭘 저렇게 붙잡고 있어… 보아하니 여학생이 남학생의 식권까지 계산해주는 모양인데, 아무리 커플이라도 공공장소에서 있거나 한 사람이 다른 일을 보고 있으면 서로를 좀 가만히 냅둬야 하는 거 아니야? 게다가 파마머리는 뭐야.. 그리고 핫핑크라니. 촌스러워! 저 여자애도 분명 시험기간이 아닌 평소 때는 화장을 덕지덕지하고 다니겠지, 자존감을 높이려고. 한국애들은 다 그렇잖아. (나는 그렇지 않지. 나는 이 사람들과 달라) 역시 나는 내가 커플이던 커플이 아니던 이렇게 대놓고 커플짓하는 사람들을 내켜하지 않아. 특히 한국에서의 내 또래 젊은 커플들은 정말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서로를 보는 것보다 남의 시선에 더 많이 신경쓰고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고. 분명 대다수의 커플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난 그렇지 않지. 나는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구. 진정한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을 바꿔본 경험이 있지 훗. 저들은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을 거야) 난 이것에 대해 확신해.’

막상 써놓고 보니 내가 이런 생각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가졌다는 게 충격적이고 부끄럽고 슬프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 분명 저런 부류의 생각들을 했었고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계산을 다 마치고 뒤돌아서 나를 보기 전에는 말이다. 여학생이 식권을 두 장 쥐고 뒤돌아 나를 지나쳐 식판으로 향했을 때 남학생은 여전히 여학생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는 장님이었다. 순간 그의 감겨진 눈을 보는데 멍해졌다. 맙소사. 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숙사를 돌아다니면서 한두번 마주친– 그리고 마주칠 때마다 안쓰럽기도 하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는– 사람이었다.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바닥을 탁, 탁 때리며 길을 찾던 그의 모습이 뇌리에 느쳤다. 지팡이를 잃어버렸던 걸까? 그는 여학생의 팔뚝을 꼬옥 잡은 채 밥을 받으러 갔고 나는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그 “커플”을 눈에 담기조차 미안했다. 내 생애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불과 몇 초 전에 생각했었던 ‘나는 저렇지 않지’와 ‘난 이것에 대해 확신해’라는 감정들이 얼마나 교만하고 투박하고 어리석은 것들이었는지. 그렇다. 나는 저렇지 않았다. 나는 저것보다 못했다. 나는 절대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질 만큼 잘 모르고 미숙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식권을 사 밥을 받으러 갔는데 내 앞에 그 남학생이 있었다. 원래 반찬이 앞에 쭈욱 나열되어 있었서 스스로 가져가는 시스템인데 밥을 나누어 주시는 아주머니께서 그 학생에게 “조금만 더 옆으로 가, 더 옆으로”라고 말씀하시며 다음 반찬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셨다. 그 학생은 곧 반찬을 다 가지고 밝은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자리로 갔다. (지팡이도 없이 손에 식판을 들고 어떻게 자리를 찾아갔는지는 보지 않았다. 그 남학생을 볼 면목이 없었다.) 다시금 대단하다고 느꼈다. 남들이 겪지 않는 어려움을 겪는데도 불구하고 밝고 씩씩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에게 다가가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고 (“저기요, 정말 죄송한데 제가 그쪽에 대해 이러이러한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이런 오해를 해서, 또 이런 나쁜 생각을 해서 정말 미안해요. 내가 정말 미안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마주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창가쪽에서 점심을 먹는데 밖의 잔디가 너무나도 푸르고 하늘은 더 푸르렀다. 공기는 햇살로 가득차 눈이 부셨고 모든 것은 빛이 났다. 음식을 씹으며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데 새삼 깨달았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내가 여태까지 너무나 당연시하고, 시각이라는 걸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언젠가 들었던 설교에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우리 모두는 덤으로 사는 거라고. 영생을 얻을 자격이 눈곱만치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셨으니 이제 우리의 삶은 다 덤이라고.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나의 바닥을 보았고 나의 본능이 얼마나 죄로 가득 차 있는지 살짝 가늠할 수 있었다. 역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오셨어야 했구나. 썩은 사과를 냉장고에 계속 둔다고 썩은 것이 괜찮아질 수 없듯이 내게는 정말 소망이 없구나. 썩어진 건 버려질 수밖에 없는, 버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이구나.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십자가도, 생명도, 시각도, 맛있는 음식도, 좋은 성적도. 이 삶에서 내가 마땅히 취해야 하는 건 없다. 나는 그저 죄인이기 때문에 그저 모든 것이 은혜이고 덤이 되는 것이다. 덤으로 사는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감사합니다”하는 것 밖에 없다. 건강에 감사합니다. 건강한 가족에 감사합니다.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합니다. 맛없는 학식에 감사합니다. 안정된 생활에 감사합니다.

동시에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 무엇도 판단을 할 위치도, 주제도 안되기에 결국 나는 나만 잘하면 된다. 나 혼자 잘하기도 버거운데 무슨 다른 사람을 판단하겠는가. 그렇기에 삶의 모든 부분은 0에서 시작하지 않고 +에서 시작한다. 이 사실을 인식해서 감사함으로 살던 인식하지 못해서 불평하며 살던 이건 팩트(fact)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내 잣대를 들이대며 가치를 매기면 그건 무지함을 드러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내 주제도 모르는 사람이오, 하고 대놓고 외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동이다. 물론 인간이란 피조물은 종종 그런 무지함을 범하긴 한다.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왜 나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었냐고, 따지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건 나 자신을 모르고 또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마치 내가 오늘 보았던 남학생이 처음에는 장님인 줄 모르고 왜 여학생의 팔을 그렇게 붙잡고 있었냐고 속으로 나무랐던 것처럼.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기에 오해를 하고 편견을 갖는 것이다. 내 삶이 덤이라는 사실을, 결국 하나님이 나에게 (의무적으로) 해줘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그리고 예수님께서 전혀 하시지 않아도 되는 희생을 나를 위해 감당해내셨다는,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사실을 인식할 때 내 삶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진짜 ‘덤’이구나, 를 실감한다. 다시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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